[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KBS2 < 공주의 남자 > 6회, 급기야 문종께서 승하하시고 말았다. 부친의 타계가 슬프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느냐만 특히나 경혜(홍수현) 공주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 아닐 수 없다. 말이 좋아 왕실이며, 세자며, 공주지 고립무원의 처지와 다름없는 외로운 두 남매의 풍전등화와 같은 앞날이 안타깝기만 했다. 다행히 안평대군의 도움으로 승하하시기 전 밀지를 내리시어 김종서(이순재)를 다시 불러 좌의정에 제수하고 종친이 아닌 의정부가 새 왕을 보필하라고 명하셨으나 이미 극 초반 김종서의 무참한 죽음을 목격했던지라 공주의 통한어린 눈물과 실신에 이르는 슬픔에 감정 이입이 아니 될 수가 없었다.
세상 천지에 원수가 내 배필을 정해주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부모의 강요로 억지 혼인을 해도 복장이 터질 마당에 숙부인 수양이 배경 없는 허수아비 같은 인물 정종(이민우)을 찍어다 붙여 놓았으니 아무리 하늘같이 모셔야할 지아비라 해도 정이 갈 리가 있나. 더구나 세자(노태엽)에게 힘을 보태줄 든든한 부마감으로 내정됐던 김종서의 자제 김승유(박시후)와의 혼인이 깨지는 바람에 오른팔을 잃은 좌불안석인 상황이 아닌가. 속이 제 속이 아닐 판에 그 모든 원인 제공자인 수양의 딸 세령(문채원)이 혼인 당일 얼굴을 들고 나타났으니, '그저 공주마마의 길례를 경하 드리고 싶었다'라는 소리에 따귀가 아니라 목이라도 조르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세자의 안위를 두고 협박을 하는 수양의 기세가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상께 세령의 공주 사칭을 고변하지 않은 것은 결국 세령의 목숨을 구하고 싶어서였을 게다. 세령을 냉대하며 야멸치게 나무랄 때도 세령을 아끼는 마음이 엿보였던 공주였으니까.
그렇게 공주가 어렵사리 작심하고 살려놓은 목숨이건만, 수양이 조종하는 원치 않은 결혼으로 인해 어린 세자와 위중하신 부왕을 남겨두고 사가로 쫓겨난 공주의 피눈물 나는 심경을 헤아렸으면 두문불출 백날, 천 날 반성을 해도 시원치 않겠건만 세령은 어머니(김서라)를 따라 주상의 쾌유를 비는 불공을 드리러 가던 날 동자 스님들을 데리고 또 다시 저잣거리 구경을 나섰다. 여유자적 그네 터에서 승유와의 지난 추억에 잠겨 있는 세령을 보고 있자니 절로 혀가 차졌다. 철없는 나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그리 생각 없는 처신을 할 수 있나. 주상 전하가 위독하신 망극한 상황에 누구보다 일 거수 일 투족이 조심스러워야 할 종친 댁 규수가, 그것도 경혜 공주가 떠안게 된 이 모든 비극의 단초임을 부정할 수 없는 인물이 어떻게 그런 경거망동을 일삼을 수 있는지 원. 지금으로 치면 경호원 두어 명이 24시간 붙어 있고도 남을 실세 수양대군의 딸을 풀어놓은 망아지 모양 쏘다니게 놔둔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공주가 사라졌다하여 모후의 능을 찾았으리라 판단하고 몸종 하나 없이 뒤를 따라나선다는 것도 어이가 없다. 기록을 찾아보면 경혜 공주의 모친 현덕왕후를 처음 모셨던 곳은 경기도 양주다. 요즘 세상이라 해도 언감생심 엄두를 못 낼 거리이거늘 생각 없이 홀로 나섰고 아니나 나를까 결국 또 한 번 김승유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날 밤, 공주에게 다시는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 약조한 김승유가 아니던가. 공주가 알았다가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건만 둘의 뜻하지 않은 밀회를 알 길이 없는 공주는 세령이 건넨 모후의 능 주변에서 꺾어온 꽃을 보며 감동하는 듯했다. 에구, 불쌍하신 공주마마.
세령을 보고 있으면 눈치 없는 것도 크나큰 죄라는 생각이 든다. 순수한 것도 좋고 사랑도 좋으나 '아무 것도 몰라요'하는 얼굴로 끝없이 사람 속을 긁어가며 사건사고를 저지르는 인물로 KBS2 < 추노 > 의 혜원(이다해)과 쌍벽을 이루는, 정이 도무지 안 가는 민폐 캐릭터로 등극한 세령. 하루라도 빨리 불쌍한 공주에게 심적으로나마 의지가 좀 되어주면 좋겠다. 지금이야 더도 덜도 않고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꼴이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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